전체 글48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사건 중에서 삼 년이라는 세월이 나를 이 11월의 비 오는 밤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러나 어쩌면 나는 이 새로운 세계에도 조금씩 익숙해져갈 것이다. 시간은 걸릴지 모르겠지만 차츰 뼈와 살을 이 무겁고 습한 우주의 단층 속에 파고들게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든 스스로를 동화시킨다. 아무리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소멸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나는 떠올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베개 맡의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침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폈다. 그리고 꿈이 없는 잠 속으로 의식이 침몰해갔다. 비가 창을 두드리고, 어두운 해류가 잊혀진 산맥을 들추어냈다. 선명한 달빛이 주방 창으로도 들어와 바닥과 벽에 기묘한 음영을 드리웠다. 그것은 전위극의 상징적인 무.. 2024. 10. 30. 습작) 올가, 성 요한절 습작.. 이었으면 차라리 좋겠지만 이것은 습작도 아니다. 전혀 내 오리지널티의 글이 아니다. 욘포세의 ‘저사람은 알렉스’의 문장을 대거 가져와 다른 스토리로 짜집기 했다. 왜 그랬을까? 그냥 그러고 싶었다. 필사를 하다 실패하였을때 뭐라도 해보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에 반해 이런 짓을 저질렀다.. 비어있는 스토리에 몇문단을 채운 것 뿐, 대부분 욘포세의 문장이다. 이 글은 단순히 연습을, 욘포세 문장을 느끼기 위한 글이다. 29세의 올가, 개썰매를 타고 떠난다남편과 올가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남편과 그녀, 둘뿐인 곳. 다른 모든 사람들이 떠난 곳. 봄이 봄이며, 가을이 가을이고, 겨울이 겨울인, 그리고 여름이 여름인 곳에서 살고 있다. 밤이 되면 어둠이 어둠인 곳, 그런 곳에서 살.. 2024. 10. 24. 필사하기 안좋지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책들 박민규‘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단편집. 워낙 개성 강한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어 박민규 소설은 절대로 필사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독특한 문장을 가진 작가이다. (그럼에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꽤나 많이들 필사하는 책이다) 그림도 아니고, 문장에 이렇게 작가의 개성이 배어있을 수 있다니 감탄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 막상 필사를 해보면 길들여 질수가 없는 문장이다. 한참을 필사하다보면 내 문장과 박민규의 문장이 섞이며 이도 저도 아닌 문장이 나온다고나 할까? 하지만 박민규 소설을 필사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적어도 나 자신의 문체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되고 남는다. 내가 너무 평이한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 한강한강의.. 2024. 10. 24. 필사하기 좋은 책 어느덧 매일 오전 45분 필사를 시작한지 4년이 흘렀다. 많은 책을 필사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인상 깊었던 필사하기 좋은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사하기 좋은 책이란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영감을 주는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생각이 담긴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문장력을 키울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내가 소개하는 책은 소설의 작법에 따른 문장력을 키우는데 적합한 책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필사란 각자가 자신이랑 맞는 작가를 찾는 과정이다. 본 포스팅에 추천된 책은 참고로만 찾아보시면 좋겠다. 필사하기 좋은 책오정희중국인 거리의 오정희 작가님 책이다. 특별히 떨어지는 소설 없이, 하나하나가 다 주옥 같은 문장을 보여주는 소설 들이다. 출간한지 시간이 지난 책이라.. 2024. 10. 22. 한강, 내 여자의 열매 중 '아기 부처' "이 길을 따라서 계속 가면 너 사는 동네가 나온다더라만. 이렇게 걸어서는 닷새가 걸릴지 엿새가 걸릴지 모르겠구나. 되돌아가려고 하면 꼭 산 저쪽에 너를 남겨두고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할 때도 있었다." 나무 등걸을 잡고 쉬는 나를 돌아보며 어머니는 뜻밖의 말을 했다. "집에서도 이 산을 보고 있으면, 저 뒷자락에 네가 살고 있으려니 싶었으니......이 산이 너를 나하고 이어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더 커 보이기도 하더라." 그녀의 얼굴은 진심으로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날 오전, 마감 기한에 겨우 맞춰 출판사에 도착한 나는 원고만 건네주고 바로 거리로 나왔었다. 않기 시작한 뒤 시내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길고 스산했던 겨울이 어느 사이 끝나 가고 있었다. 여자들의 옷은 얇아.. 2024. 10. 22. 한강, 희랍어 시간 중에서 스위스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제네바에는 들르지 않았다. 그의 무덤을 굳이 직접 보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가 보았다면 무한히 황홀해했을 성 갈렌의 도서관을 둘러보았고, 루체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저물녘까지 얼음 덮인 알프스의 협곡 사이를 떠다녔다.어느 곳에서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풍경들은 오직 내 눈동자 속에만 기록되었다. 어차피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와 감촉 들은 코와 얼굴과 손에 낱낱이 새겨졌다. 아직 세계와 나 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여느 때처럼 묵묵히 흑판을 올려다보던 그녀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단신에 머리가 반쯤 벗어진 불어선생이 그 단어를 가리키며 발음했다. 그녀의 방심한 두 입술이 어린아이처럼 달싹이려 했다. 비블리오떼끄. 혀와 목구멍보다 깊은 .. 2024. 10. 21.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