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3 하성란, 여름의 맛 수록 단편, 알파의 시간 중에서 세잔은 '풍경이 내 가운데에서 성찰하고, 나는 그 의식이 된다" 고도 말했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트 빅투아르 산이 세잔을 바라보았다는 뜻이다.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 앞에서 산이 그를 볼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이다.내 앞의 풍경은 까마귀 한 마리 끼어들 틈 없이 조밀하고 견고했다. 그때까지도 고갯마루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차는 없었다. 순간 갈까마귀 떼가 날아오르다 반짝 하얀 배를 보이듯 풍경 한 귀퉁이가 빛났다. 무언가가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뜨고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것을 본 것이 아니 라 그것이 나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야립 간판은 소유주가 달라 보이는 밭과 밭에 한 다리씩 걸친 채 우뚝 솟아 있었다. 산모퉁이 어디쯤에선가 아련하게 낙석 소리.. 2024. 11. 22. 하성란, 여름의 맛 중에 먹어보지 않아도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바로 그 복숭아나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듯했다. "복사꽃이 피면 산등성이가 온통 꽃바다가 됩니다. 바람도 비도 꽃이에요. 돗자리를 깔아놓고 밥도 먹고 노래도 불러요. 내 복숭아나무는 산등성이 맨 위에 있어 햇빛을 가장 오래 받지요." 그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맨발로 복사꽃이 흐드러진 복숭아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건 매년 복사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그곳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것에 비해 그의 얼굴은 점점 더 희미해져 나중엔 희부연 실루엣으로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 입구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이 서 있었다. 촌 여자들이 콩국을 팔았다. 고무로 된 커다란 젓갈통이었다. 그 안에 콩국이 가득했다. 커다란 .. 2024. 11. 13. 필사하기 좋은 책 어느덧 매일 오전 45분 필사를 시작한지 4년이 흘렀다. 많은 책을 필사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인상 깊었던 필사하기 좋은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사하기 좋은 책이란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영감을 주는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생각이 담긴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문장력을 키울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내가 소개하는 책은 소설의 작법에 따른 문장력을 키우는데 적합한 책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필사란 각자가 자신이랑 맞는 작가를 찾는 과정이다. 본 포스팅에 추천된 책은 참고로만 찾아보시면 좋겠다. 필사하기 좋은 책오정희중국인 거리의 오정희 작가님 책이다. 특별히 떨어지는 소설 없이, 하나하나가 다 주옥 같은 문장을 보여주는 소설 들이다. 출간한지 시간이 지난 책이라.. 2024. 10.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