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하루키2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사건 중에서 삼 년이라는 세월이 나를 이 11월의 비 오는 밤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러나 어쩌면 나는 이 새로운 세계에도 조금씩 익숙해져갈 것이다. 시간은 걸릴지 모르겠지만 차츰 뼈와 살을 이 무겁고 습한 우주의 단층 속에 파고들게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든 스스로를 동화시킨다. 아무리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소멸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나는 떠올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베개 맡의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침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폈다. 그리고 꿈이 없는 잠 속으로 의식이 침몰해갔다. 비가 창을 두드리고, 어두운 해류가 잊혀진 산맥을 들추어냈다. 선명한 달빛이 주방 창으로도 들어와 바닥과 벽에 기묘한 음영을 드리웠다. 그것은 전위극의 상징적인 무.. 2024. 10. 30. 무라카미 하루키, 반딧불이 중에서 나는 반딧불이가 든 인스턴트커피 병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누군가 걷는 것을 잊어버린 하얀 셔츠가 빨랫줄에 걸려서 무슨 허물처럼 저녁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옥상 구석에 있는 녹슨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급수탑 위에 섰다. 원통형의 급수 탱크는 낮 동안 듬뿍 빨아들인 열로 아직 따뜻했다. 좁은 공간에 앉아 난간에 기대 있으니 아주 조금 이지러진 흰 달이 눈앞에 떠올랐다. 오른쪽에는 신주쿠 거리가, 왼쪽으로는 이케부쿠로 거리가 보였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선명한 빛의 강이 되어 거리에서 거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양한 소리들이 뒤섞인 부드러운 신음이 마치 구름처럼 거리 위로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밤의 어두운 물소리뿐이었다. 벽돌로 만든 오래된 수문도 있었.. 2024. 9. 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