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딧불이가 든 인스턴트커피 병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누군가 걷는 것을 잊어버린 하얀 셔츠가 빨랫줄에 걸려서 무슨 허물처럼 저녁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옥상 구석에 있는 녹슨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급수탑 위에 섰다. 원통형의 급수 탱크는 낮 동안 듬뿍 빨아들인 열로 아직 따뜻했다. 좁은 공간에 앉아 난간에 기대 있으니 아주 조금 이지러진 흰 달이 눈앞에 떠올랐다. 오른쪽에는 신주쿠 거리가, 왼쪽으로는 이케부쿠로 거리가 보였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선명한 빛의 강이 되어 거리에서 거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양한 소리들이 뒤섞인 부드러운 신음이 마치 구름처럼 거리 위로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밤의 어두운 물소리뿐이었다. 벽돌로 만든 오래된 수문도 있었다. 핸들을 빙빙 돌려서 열고 닫는 수문이었다. 강가에 자란 물풀들이 수면을 다 덮어버린 듯한 작은 개울이었다. 주위는 캄캄하고, 수문 위를 몇백 마리의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녔다. 그 노란 빛덩이가 마치 타오르는 불똥처럼 수면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건 대체 언제의 기억일까? 그리고 대체 어디였던 걸까.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와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앞뒤 없이, 마구 뒤섞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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