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초저녁에 장사를 막 시작한 술집이 좋다. 실내 공기는 아직 신선하고 깨끗하지, 모든 게 반질반질하지, 바텐더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면서 넥타이는 똑바로 맸는지, 머리는 단정한지 확인해 보고. 바 너머에 가지런히 늘어 놓은 술병도 좋고. 사랑스럽게 반짝거리는 술잔도 좋고. 그때마다 느껴지는 기대감도 좋아. 바텐더가 그날의 첫 잔을 준비해 보송보송한 받침에 내려놓고 옆에 냅킨을 조그맣게 접어 놓아 주는 것도 좋다. 그 술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좋아. 조용한 술집에서 그날의 첫 잔을 조용히 마시는 순간... 정말 근사하다니까.
슬픔에 잠긴 한 남자가 카운터 앞의 걸상에 앉아 바턴더에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술잔을 닦으며 이야기를 듣는 바텐더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애쓸 때 흔히 짓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손님은 중년 나이에 옷을 잘 차려입었고 만취 상태였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는데, 설령 하기 싫더라도 멈출 수 없을 듯 했다. 예절 바르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말할 때 들어 보니 혀가 심하게 꼬이지는 않은 듯했지만, 눈뜨자마자 술병부터 움켜쥐고 밤에 곯아떯어질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는 사람이 분명했다. 남은 한평생을 그렇게 보낼 테고 그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가 말해 주더라도 진실이 아닐 테니까. 본인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조차 왜곡된 기억에 불과할 테니까. 온 세상의 조용한 술집마다 저렇게 가련한 사람이 하나씩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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