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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한편의 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마리 A.의 추억

by 구구주녀 매일필사 2024. 10. 18.

1
그 푸르렀던 9월의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말없이
그녀를, 그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나는 귀여운 꿈처럼 품에 안았었다.
우리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 떠있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구름은 아주 하얗고 아득히 높아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2
그 날 이후 수많은 달들, 숱한 세월이

소리없이 흘러 지나가 버렸다.
그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묻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나는 너에게 말하겠다.
하지만 네가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나는 이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끝끝내 모르겠다.
내가 언젠가 그 얼굴에 키스를 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3
그 키스도, 구름도 거기 떠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어 버렸을 것이다.
그 구름을 나는 아직도 알고 앞으로도 항상 알고 있을 것이다.
구름은 아주 하얗고 위에서 내려 왔었다.
어쩌면 자두나무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꽃피고
어쩌면 그 여자는 이제 일곱 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구름은 잠깐동안 피어 올랐고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 이미 바람에 실려 사라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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