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일 1필사

하성란, 여름의 맛 중에

by 구구주녀 매일필사 2024. 11. 13.
먹어보지 않아도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바로 그 복숭아나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듯했다. "복사꽃이 피면 산등성이가 온통 꽃바다가 됩니다. 바람도 비도 꽃이에요. 돗자리를 깔아놓고 밥도 먹고 노래도 불러요. 내 복숭아나무는 산등성이 맨 위에 있어 햇빛을 가장 오래 받지요." 그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맨발로 복사꽃이 흐드러진 복숭아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건 매년 복사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그곳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것에 비해 그의 얼굴은 점점 더 희미해져 나중엔 희부연 실루엣으로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 입구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이 서 있었다. 촌 여자들이 콩국을 팔았다. 고무로 된 커다란 젓갈통이었다. 그 안에 콩국이 가득했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서서히 녹고 있었다. 아버지가 플라스틱 바가지로 콩국을 떠서 김에게 건넸다. 간간했다. 그녀는 허접지겁 콩국을 마셨다. 순간 국물과 함께 차갑고 미끄러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어린 그녀는 그것이 작은 물고기일 거라 고 생각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친 것처럼 콩국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양복 바짓단을 대충 접어 올려 드러난 아버지의 앙상한 발목이 보였다. 아버지의 낡은 구두에는 붉은 흙이 구두 등까지 더께로 묻어 있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녀는 자꾸자꾸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몰래몰래 웃음을 풀어놓았다.

 


 

빌딩의 회전문을 밀치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후끈 달아오른 지열이 맨 발목을 휘감았다. 한낮이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물렁물렁해지는 아스팔트의 냄새와 비오기 전 발목 높이로 짙게 깔리는 물 비린내가 아니더라도 최는 진짜 여름이라는 것을 진작에 느꼈다. 며칠 전부터 그녀는 밑창 얇은 신발을 신고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선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여름이란 말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입에 달고 살았다. 계절을 앞서는 잡지의 특성상 봄이 시작될 즈음 이미 여름호 기획이 시작되니까. 그렇지만 입에만 올리는 여름과 몸으로 느끼는 여름은 분명 달랐다.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