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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필사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사건 중에서

by 구구주녀 매일필사 2024. 10. 30.
삼 년이라는 세월이 나를 이 11월의 비 오는 밤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이 새로운 세계에도 조금씩 익숙해져갈 것이다. 시간은 걸릴지 모르겠지만 차츰 뼈와 살을 이 무겁고 습한 우주의 단층 속에 파고들게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든 스스로를 동화시킨다. 아무리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소멸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나는 떠올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베개 맡의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침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폈다. 그리고 꿈이 없는 잠 속으로 의식이 침몰해갔다. 비가 창을 두드리고, 어두운 해류가 잊혀진 산맥을 들추어냈다.



선명한 달빛이 주방 창으로도 들어와 바닥과 벽에 기묘한 음영을 드리웠다. 그것은 전위극의 상징적인 무대 세트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문득 떠올렸다. 고양이가 소나무 위로 사라진 그날 밤도 구름 한 점 없는 보름달이었단 것을. 나는 그날 밤 저녁을 먹고 나서도 혼자 툇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소나무 위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깊을수록 달빛은 음산할 정도로 강하고 선명해졌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소나무 가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따금 나뭇가지 사이에서 고양이 눈이 달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일지도 몰랐다. 달빛은 때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이게 만드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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