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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책 이야기

[책소개] 호시노 유키노부,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by 구구주녀 매일필사 2024. 9. 2.
우리는 살아 있는 행성이야. 우주 안에서 불타는 태양 주위를 항해하는 커다란 배지. 하지만 우리 각자는 유전자라는 짐을 싣고 삶을 항해하는 배이기도 해. 우리가 이 짐을 다음 항구로 실어 나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헛된 것은 아니겠지.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 중에서


소피의 세계에서 나온 저 문장은 우리 삶을, 아니 모든 생명체의 목적을 잘 표현하는 문장이다. 보자마자 인상 깊었고, 내 아이에게도 필사를 권한 문장이다. https://themoonnsixpence.tistory.com/48

그런데… 
……
정말 그럴까?

유전자라는 짐을 다음 항구로 실어 나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로 헛된 것이 아닐까?
헛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건 외부에서 봤을 때 의미이고, 내 스스로 그게 의미가 있다고 느낄까?
‘예’라고 대답했다면 한번만 더 생각해보자. (자녀 있는 부모님은 ‘예’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으니)
나의 삶은 정말 짧고, 오직 유전자를 전달하는 역할만 해야한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느낄까?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정면으로 던지는 짧은 SF만화 단편이 있어 소개한다. 호시노 요키노부의 단편집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 실려있는 “세스 아이보리의 21일”이라는 작품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수가 없다 ㅠㅠ  (소장하고 있는 것이 자랑 ㅎ)


줄거리
우주 비행사 세스 아이보리는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 한 행성에 추락하게 된다. 구조에 걸리는 시간은 21일. 그녀는 21일 간 아무도 없는 이 행성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그 행성의 시간은 우주의 시간과는 달랐다. 그 행성의 모든 생명체는 비정상적으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세스 아이보리도 마찬가지로 단 2일만에 10년이 넘는 시간의 노화를 겪게된다. 그말은 세스는 21일이 되기 전에 늙어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자신의 세포를 이용하여 클론을 만든다. 그리고 8일이 되는 날 세스 아이보리와 동일한 DNA를 가진 아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신의 과거 기억을 모두 압축 합습기를 통해 가르친다. 

10일째 되는 날, 세스 아이보리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고, 아이는 10살의 소녀가 된다. 12일째 세스 아이보리는 늙어 죽게되고, 그녀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2번째 세스 아이보리는 그 행성에(다시) 홀로 남겨진다.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17일째, 그녀는 엄마 세스가 가르쳐준데로 다시 자신의 DNA를 이용해 3번째 세스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보는 2번째 세스의 마음은 자신을 바라보던 1번째 세스의 눈빛과는 달랐다. 그리고 엄마가 죽기전에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던 “진짜 가엽은 것…” 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앞으로 4일이 지나면 아이, 3번째 세스는 1번째 세스 아이보리가 처음 행성에 도착했을 때의 나이로 성장하고 구조될 수 있다. 하지만 2번째 세스는? 

21일 전에 늙어 죽게될, 단 10일이라는 시간 만을 아무도 없는 행성에서 DNA를 전달하고 늙어 죽을 수 밖에 없는 2번째 세스는? 
유전자를 전달만하기 위해 태어난 그녀. 그녀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국 2번째 세스는 (다시)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3번째 세스는 2번째 세스가 남긴 기록을 통해 모든 사실을 알게된다. 그녀의 원망도.

그리고 마침내 21일.

3번째 세스는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행성을 탈출하게 된다. 엄마의 기억을 가진채, 엄마를 그리워하며.


행성에 착륙한 첫번째 조종사 세스 아이보리는 과거를 기억 속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3번째 세스 아이보리는 과거는 없더라도 (주입된 기억은 자신이 아닌 1번째 세스의 기억)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있다. 
그럼 두번째 세스 아이보리는?

오롯이 유전자를 전달만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두번째 세스 아이보리는? 과연 그녀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을까?


이제 다시 소피의 세계에 나온 문장을 보자

우리는 살아 있는 행성이야. 우주 안에서 불타는 태양 주위를 항해하는 커다란 배지. 하지만 우리 각자는 유전자라는 짐을 싣고 삶을 항해하는 배이기도 해. 우리가 이 짐을 다음 항구로 실어 나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헛된 것은 아니겠지.

 

행성이자 커다란 배. 처음 봤을때와는 다르게 행성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분명히 유전자를 전달하는 배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저 문장에서 행성이 빠진다면 과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와 미래가 없는 에이버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행성과 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SF 단편 만화이다.

 

(아쉽게도 스타더스트 메모리즈는 품절되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링크로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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